국내 대표 산업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인? 디자인!
“산업스파이가 어떤 기업의 비밀정보를 캔다고 가정해봅시다. 어딜 들어가면 가장 손쉬울까요. 기획? 아니면 마케팅? 수백 수천 장의 서류를 읽고 내가 다 정리해야만 할 겁니다. 저는 디자이너실을 추천합니다. 디자이너실에서는 중요 서류 몇 장만 들춰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.”
디자인전문 컨설팅 기업 다담디자인의 정우형 대표(49)는 산업 디자인을 정의하며 이 같이 말했다. 정 대표는 “디자인은 단순히 모양이 예쁘다, 내 마음에 든다 등의 느낌도 주지만 기업이 가진 제품에 철학과 시장 상황, 기술을 녹여 응집하는 것”이라고 말했다.
정 대표는 산업스파이라는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이러한 예시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. 많은 요소들을 하나로 응집하는 것.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만드는 게 산업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.
그는 “디자인의 좋고 나쁨이라고 하는 것은 예쁘다, 아니다와 내 마음에 든다, 안 든다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이보다는 제품의 신뢰도가 높냐 낮냐로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”며 “이러한 신뢰도는 얼마나 정성 들여서 제품을 만들었는가에 따라 차이가 난다”고 말했다.
똑같은 모양이어도 어떤 소재를 썼고 또 어떻게 정성들여서 가공했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는 설명이다.
정 대표는 “애플 같은 기업은 상품을 개발할 때 기획한 제품에 가장 적합한 부품을 직접 개발하거나 주문 생산을 하는데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볼트 하나도 기존에 있던 것들을 쓰려고 한다”며 “그러면 제품에 볼트를 맞추는 게 아니라 볼트에 제품을 맞추게 되는 꼴”이라고 말했다.
정 대표가 이끄는 다담디자인이 디자인 컨설팅 기업을 지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. 단순히 뭔가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들어가는 하드웨어 부품 및 소프트웨어를 선택하고 수급하는 역할까지 도맡아서 한다. 소재부터 각종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.
이러한 지향점이 있기 때문에 다담디자인 내에서는 ‘용역’이란 단어를 금기어로 취급하고 있다.
정 대표는 선행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. 선행디자인이란 향후 1년에서 5년 이후의 소비 트랜드를 예측한 뒤 이에 맞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을 뜻한다. 컨셉은 물론이고 새로운 시장까지 만든다는 것이다. 여기에 다담디자인의 디자인 인프라를 활용해 다양한 해결 솔루션을 제공한다.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개량하면 한 템포 늦다는 것이 정 대표의 설명이다.
그는 “지식보다는 지혜가 좋고 지혜보다는 직관이 더 우수하다”며 “디자이너들은 그 직관을 키우기 위해 고생을 하는 것”이라고 말했다.
국내 대표 산업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정우형 대표는 84년 금성사(현 LG전자) 디자인종합연구소 R&D 팀장을 지내다 92년 디자인 전문 컨설팅 기업 다담디자인을 설립했다.
다담디자인은 내비게이션, MP3P, 청소기, 이어폰, 카메라, 공기청정기 등 다양한 기업의 가전/IT 분야의 제품을 디자인 한 바 있으며 샤프전자, 필립스, 지멘스, 3M 등 세계적인 외국 기업의 제품을 디자인하기도 했다. 17년 연속 굿디자인상 수상 경력이 있으며 올해 초에는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5개의 제품이 동시 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.
한주엽 기자 powerusr@ebuzz.co.kr | 2008-10-06